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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계관이 재등장하며 미국의 볼턴을 저격 하였습니다.


"핵포기만 강요하면 북미회담 재고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등 북핵 관련 협상에서 완강하게 미국을 상대했던 외교일꾼이다. 


그가 협상장에서 미국 대표들과 맞서는 동안 미국의 대통령은 빌 클린턴에서 조지 부시로, 다시 버락 오바마로 바뀌었다. 그만큼 북-미 핵협상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크다.


그의 협상 전략은 북핵 폐기 과정을 잘게 쪼개는, 이른바 ‘살라미 전술’과 ‘행동 대 행동 원칙’을 통해 단계별 보상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지금도 강조하는 ‘단계적, 동시적 조처’에 입각한 접근법을 시종일관 내세웠다. 


김 부상은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경수로 제공, 평화적 핵이용 권리 인정, 마카오 은행 비디에이(BDA)에 대한 금융제재 해제 등을 관철시켰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한 ‘불충분한 협상’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이나 ‘2·13 합의’ ‘10·3 합의’를 보면, 북한이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깔려 있다.


북한은 2003년 제1차 6자회담을 앞두고 당시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인 볼턴 국무부 차관이 미국의 수석대표로 나오는 것을 극히 꺼렸다. 볼턴 차관이 나오면 상종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맞섰으나, 볼턴 차관은 끝내 협상장에 나오지 못했다. 


김 부상은 그의 불참이 확인된 2차 6자회담부터 북한의 수석대표로 나섰다. 그러나 볼턴 차관은 협상장 밖에서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고, 김 부상은 그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김 부상은 한동안 북핵 외교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고령인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 때문에 그의 이번 담화가 이름을 빌린 것일 뿐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의 이름에 담긴 상징성을 통해 미국에 대한 경고의 무게를 강조했다는 분석이다.


볼턴 차관이 당시 협상장 밖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했다면, 이번엔 김 부상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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